식탁 한켠에 늘 놓여 있고, 냉장고 선반에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은 작은 병 하나.
빨간 뚜껑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간장. 바로 기꼬만(KIKKOMAN)이다.
이 브랜드가 단순한 간장 제조사가 아니라 불멸의 브랜드, 그리고 산업 디자인의 상징으로 자리잡기까지는 긴 시간과 기묘한 역사가 있었다.

혀끝에서 시작되는 기묘한 감칠맛의 구조
기꼬만 간장을 한 방울 손가락에 떨어뜨려 혀끝에 대보면, 흔한 간장의 단순한 짠맛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예리하게 들어오지만, 어느 순간 짠맛이 침과 섞이며 풀리고, 그 자리를 농밀한 단맛과 감칠맛이 채운다.
삼키고 난 뒤에는 구운 양파나 살짝 탄 빵 테두리 같은 뉘앙스가 기묘하게 남는다.
그저 콩과 밀, 소금으로 만든 간장인데 왜 이런 복잡한 맛이 날까?
그 이유는 17세기 일본 치바현 노다마을에서 시작된다.

신이 간장을 만들라고 내려준 땅, 노다
노다 지역의 지형은 그야말로 간장을 만들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 북동쪽에서 일본 최고의 콩과 밀을 공급하는 평야
- 서쪽에서는 ‘최상의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
- 두 지역을 연결하며 도쿄(옛 에도)로 바로 이어지는 강줄기
재료 수급, 물류, 생산환경까지 삼박자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이 완벽한 땅에서 간장을 ‘업’으로 삼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다.
뜻밖에도, 전장에서 칼을 들고 싸우던 사무라이들이었다.
칼을 내려놓은 사무라이, 간장을 집요하게 다루기 시작하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 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사무라이가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단련된 이들은 강박적인 성격과 끝없는 기다림, 정밀함 같은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 능력은 농사보다 발효식품 제조와 더 잘 맞았다.
특히 노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던 두 가문 '모태기와 다카나시'는 서로 경쟁하듯 간장 제조 기술을 갈고닦기 시작했다.
온도와 습도 변화를 칼날과 같은 집중력으로 지켜보며, 콩과 밀 위에 핀 누룩(코지)의 상태를 매 순간 관찰하며, 가문의 명예를 걸고 “옆집보다 맛이 못하면 할복해야 한다”라는 수준의 광적 경쟁을 펼쳤다.
이들은 간장 한 방울에도 사무라이의 집념을 녹여냈고, 이 경쟁은 수백 년간 이어졌다.
서로 죽이던 가문, 결국 하나가 되다!
19세기 후반, 서양 문물이 일본에 쏟아지면서 노다 지역 사무라이들은 위협을 느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모두 몰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모든 레시피와 이름을 통합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탄생한 이름이 바로 "기꼬만(龜甲萬)"이다.
- 기꼬(龜甲) = 거북 껍질
- 만(萬) = 1만 년, 영원
만년을 버티는 불멸의 브랜드라는 뜻을 담았다.

간장 하나로 미국을 정복한 전략
2차대전 이후 일본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꿈꿨고, 기꼬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미국인들에게 간장은 그저 ‘이상한 검은 액체’라는 인식뿐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시 간장병은 맥주병에 코르크 마개를 얹은 수준이라 깔끔하게 따르지도 못했다.
기꼬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디자인계의 전설, 에쿠안 겐지에게 의뢰한다.
MoMA가 사랑한 빨간 뚜껑 간장병
에쿠안 겐지는 무려 3년 동안 100개 이상의 시제품을 만들며 간장병 디자인에 몰입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어떤 손 크기에도 자연스럽게 감기는 유려한 곡선(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음)
- 어떤 각도로 기울여도 흘러나오는 양이 일정한 구조
- 마지막 한 방울까지 ‘딱’ 끊기는 정교한 주둥이(구멍이 두개로 한쪽 구멍을 막으면 간장이 나오지 않는 구조)
- 식탁 위에 두었을 때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가 되는 디자인

이 병은 이후 MoMA 영구 소장품이 되었다.
그리고 기꼬만은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간장을 앞세우지 않고 ‘테리야끼’를 앞세운 천재적 수
기꼬만은 미국 시장을 공략할 때 ‘간장’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간장을 베이스로 만든 소스를 먼저 퍼뜨렸다.
바로 테리야끼 소스다.
원래 테리야끼는 일본의 조리법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기꼬만은 이를 새로운 바비큐 소스로 재해석해 제품화했다.
미국인들은 처음에는 테리야끼 소스에 빠졌고, 그 근원인 간장에도 자연스럽게 손을 뻗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상상을 초월한 성공을 가져왔다.

글로벌 간장 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브랜드
기꼬만은 1973년, 드디어 일본이 아닌 미국 위스콘신에 대형 간장 공장을 세운다.
현지 생산, 현지 소비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현재 기꼬만은
- 세계 100여나라에서 판매
- 글로벌 간장 시장의 50% 차지
- 미국 시장 점유율 55%
즉, 전 세계에서 팔리는 간장 두 병 중 한 병은 기꼬만이다.
사무라이의 집념, 장인의 발효 기술, 에쿠안 겐지의 디자인, 그리고 뛰어난 세계화 전략이 만든 결과다.
간장으로 시작해 바이오 산업까지
기꼬만은 이미 성공한 간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조미료, 건강식품, 발효기반 바이오 산업 등으로 확장하며 여전히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에는 일본 농림수산성과 함께 유전체 융합을 통한 새로운 과일 개발 같은 기묘한 실험도 진행했는데, 이는 발효와 미생물 연구에 대한 기꼬만의 끈질긴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꼬만은 단순한 간장 브랜드가 아니다.
사무라이의 집착과 발효 장인의 기술, 세계적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 그리고 놀라운 시장 전략이 결합된 문화적 상징이다.
식탁 위 빨간 뚜껑 병 하나에는 400년 가까운 역사가, 그리고 세상을 뒤흔든 디자인이 숨어 있다.
'Curious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 "스타틴" 부작용의 논란과 진실은? (0) | 2025.11.30 |
|---|---|
| 완벽했던 복지국가 스웨덴이 사회 위기로 흔들리는 진짜 이유는? (1) | 2025.11.08 |
| 미래 금융의 혁신,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달러의 확산, 새로운 금융 질서의 시작 (0) | 2025.10.12 |
| 만약 환율 2,000원이 되는 상황 ‘퍼펙트 스톰’이 왔을 때 환율 급등이 내 지갑에 미치는 영향과 환율 위기 속 생존 전략은? (0) | 2025.10.11 |
| 동유럽 공산권에 속한 체코는 왜 공산주의를 법으로 금지하는가? (3) | 2025.07.20 |